위천면 모동리 754번지의 5 석동마을 내에 있는 한양조씨의 재실이다.
충의위 조광덕과 그의 아들 조굉의 도덕과 충의 그리고 효행을 기리며 세향하는 곳이다.


역문
충의재 기
충의재는 옛 안음고을 위천면 모동리에 있으니 조씨들이 그의 선조 충의위 휘 광덕 호 우재와 그의 아들 휘 굉 호 운산 두 어른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조씨의 본관은 한양으로 고려 때 조순대부 첨의중서사 휘 지수로부터 시작되었고 조선 중반기에 이르러서는 명공달관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었는데 기묘사화이후에는 관직보다 유림사업에 힘을 기우려 왔다. 수오재학은 삼종숙 정암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사자와 육경에 통달하였고 정충사에 배향되었다. 아들의 휘는 효열인데 갑오년에 무과를 급제하고 선전관과 비변랑에 제수되었다. 이충무공을 따라 한산도 대첩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므로 사적이 국사에 빛나니 즉 우재공의 선고이고 운산공의 할아버지시다. 두 어른의 자품이 훌륭하심은 부조의 거룩한 가통이 어찌 아니리오. 포부 또한 컸으나 현달을 바라지 아니하고 오직 의리를 숭상하면서 임천에 묻혀 농사짓고 글 읽으며 자손들을 길러냈다.
이제 공의 세대를 격한지 10여세라 자손들이 농상에 힘쓰고 시례를 숭상하니 따뜻하고 안락한 가풍이 시골 이웃 온 누리에 가득하다. 오늘에 이 재실을 짓게 된 것은 두 어른을 사모하는 곳으로 일가들이 모이고 손님을 맞이함에도 그 뜻이 있다 하겠다. 재가 준공되자 재호를 충의재라 하고 당은 운산 문은 경앙이라 액자 하였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 기문을 청하기에 내가 생각하여 보건데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위선사업을 하는 집안이 많으나 사정은 마냥 같지 아니하다. 100년의 지성과 몸소 농사지어 모은 재원으로 거사를 성취한 이번의 조씨 집안일이야 말로 기문이 없다한들 누가 탓 하랴. 선조의 뜻을 받들어 충효지가의 문호를 열어서 무궁한 앞날을 기약할 것이다. 끝으로 청하건데 이 기문을 벽에 걸어 후손들에 영원한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영평 문백은 기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