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리 석동 동네에 있다. 안동인 유악처사 권협을 기리는 비로 후손들이 서기1988년에 세웠다. 도주 김기언이 글을 지었고 권여현이 글씨를 썼다. 권협은 삼괴당 시민의 증손이요 묵재여눌의 아들이다.
역문 유악처사 안동권공 협 유지비명 병서 권씨는 본래 신라 종성으로 휘 행이 고려태조에게 성을 하사 받아 승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로 안동을 식읍 함에 안동이 관향이 된 후 예천부원군 우정승 휘 한공이 시가 문단으로 화원군이며 휘 중달은 시가 충헌으로 역시 우정승이 되었으니 대를 이어 빛이 나서 나라에 이름이 높았고 감정공 휘 집덕이 삼가에 처음 살았으니 3세에 이르러 휘 금석은 봉훈대부 전옥서 봉사이며 휘시민은 호가 삼괴당으로 김한훤당문인이며 목사 정종아의 사위가 되어 안의 사마리로 이사 왔다. 일찍이 성균생원시에 급제하여 성묘조에 세마 벼슬에 천하였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문장이 장하여 학림사에 향사하였다. 휘 일은 호조정랑이며 호가 일신정이고 휘 여눌은 호가 묵재로 학문이 창망하였다. 비는 창녕성씨이니 병마사 윤동의 손녀이며 충순위 한준의 따님이다. 휘 건은 호가 노천으로 어지 아우가 있어 휘가 협이요 자는 학지이니 이가 곧 유악공이다. 공이 명종신유에 태어나서 선조병술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황산마을 뒤 계양동 묵재공 묘의 북쪽 묘좌에 장사하였다. 슬프다. 공으로부터 중세 이후로는 조정에 벼슬 못하였고 이름난 이가 없었다. 오직 소박한 선비로 기풍이 장한 형님이 있었고 공 또한 일찍이 임갈천 노옥계 두 선생 문하에 출입하여 배워서 넉넉한 재목이 되었으나 불행이도 명이 짧아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아깝고 슬픈 일이 아니리오. 공이 강양이씨 만익의 따님에게 장가드시어 사마리에서 재를 넘어 모전에 자리 잡은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생각하여 보건대 이곳이 비록 승지는 아니지만 호중천지로 논밭도 다소 있어 편히 살 수 있는 곳으로 단정한 것이리라. 불행히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매 아우 계수의 아들 호군인 극예를 계자하여 두 손자가 있으니 덕명과 지명이고 증손은 만철 외에 몇 명이다. 애달프다. 공이 일찍 세상을 뜨시고 후에 병란을 겪었으니 상고할 근거가 없었으나 현지의 행의문장에 두어 글귀 실려 있고 전하는 말에 모전이 권씨의 세장이라 하기도 한다. 후손 윤석이 이번에 거사를 시작하였으니 대개 흥폐는 부지라 하였거늘 이번 일이 다시 흥함의 근원이 어찌 아니리오. 이번에 비를 세우려 하면서 나에게 비문을 구함에 내 이미 그의 묘갈명을 찬한바 있어 사양하였으나 묘의 석역은 문로 합력으로 이루었고 이번 역사는 윤석의 독담임에 하는 수 없어 새겨 가로되 바탕이 수레이면 실은 것이 문행이라 문행바탕 겸비함은 그 차례가 어렵도다. 하늘도 무심하여 수한 얼마 아니 주니 이곳에 이른 사람 가련하다 정색하네. 손발 묶음 아니온 데 명이 어찌 그랬던가. 바른 사연 여기 써서 찾는 사람 알리려고 그 대략을 추렸으니 마을 어귀 세웠노라. 단기4321년 무진 3월 일 12대손 윤석근수 하고 도주김기언찬 족 후손 여현근서
(50103) 경남 거창군 위천면 원학길 324 위천면사무소 대표전화 : 055-940-7560
Copyright(C) by Geochang.go.kr All rights reserved.